나에게 제주는 마음의 고향이다. 나고 자란 곳도 아니지만 늘 그렇게 표현한다. 이유를 묻는다면, 아무래도 마음의 고향엔 일상의 팍팍함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즐거웠던 기억만 두고 온 곳이 대개는 그 자리를 꿰차는 법이다.

이번에도 행복한 기억만 잔뜩 두고 온 나의 제주. 특별할 것 없었지만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모자람 없이 즐거웠다. 어떤 날에는 내가 정의하는 사랑을 곱씹어 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에는 좋아했던 과거의 간식을 추억해볼 수 있었던 제주의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제주 서쪽 가볼만한곳 BEST 3
제주, 내 마음의 고향

1. 곽지해수욕장

제주 서쪽 가볼만한곳 곽지해수욕장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을 볼 때면 저항 없이 사랑을 말하게 된다. 아무래도 요즘 같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으니깐. 때에 따라 색과 모양은 달라지지만 쉬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일렁이는 물결들, 그런 물결의 춤사위를 보고 있노라면 변화가 익숙한 세상의 사람도 영원 같은 걸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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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곽지해변은 환절기 시즌 지하철 같았다. 서핑을 위해 상의를 탈의한 사람들부터 파도를 타고 넘어오는 바람에 가디건을 여미는 사람까지. 발바닥에 닿는 모래사장의 온도가 제법 뜨거웠던 계절임에도 서로가 느끼는 온도는 다르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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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져나가는 낮 시간에는 수심이 얕아져 어린아이들도 마음껏 해변을 누비기에 좋다. 어른이들도 충분히 물장난을 치기 좋은 날엔 용감하게 신발을 벗어던졌다. 참방참방 물보라를 일으키며 느꼈던 푸른 바다. 종아리까지 시원하게 적셔오는 파란 기운에 여름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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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면 곽지해변을 둘러싼 한담해안산책로로 향해보자. 왁자한 해변가의 사람들을 배경지 삼아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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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해변은 애월 카페거리와도 거리가 가깝다. 멍하니 걷던 산책로가 지겨워질 때, 잠시 멈춰 커피타임을 갖거나 간단한 디저트를 포장해 모래사장에서의 피크닉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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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해변의 진가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 드러난다. 같은 시간이라도 구름의 밀도와 바람의 질감에 따라 다채로운 하늘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렇게나 서로 다른 색깔들을 모두 ‘하늘색’이라 부를 수 있다니. 분홍빛도, 보랏빛도, 푸른빛도 대자연 아래에선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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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장소를 떠나는 발걸음은 의외로 아쉽지 않았다. 며칠 동안 눈에 담았던 바다가 건네준 에너지로 나는 충분히 내일들을 살아낼 수 있게 됐고, 다시 만나는 날에는 또 다른 하늘과 물결로 감동시킬 테니 말이다. 그런 믿음이 바다이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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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코메아

제주 서쪽 가볼만한곳 코코메아

한적한 판포리 마을을 누비다 보면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 작고 귀여운 간판이 보인다. 나는 코코아? 같은 유치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사실 코코메아는 뉴질랜드 마오리어로 ‘선셋(sunset)’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해가 지는 시간에 유독 햇살이 예쁘게 들어서일까. 그 이름처럼 늦은 오후에 방문한 코코메아의 내부는 오렌지빛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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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명확했다. 10년도 전에 뉴질랜드에서 먹었던 미트파이를 맛보기 위해. 파이지 안을 가득 채운 고기와 치즈 속. 외국이 처음이었던 어린 나에게 꽤 인상 깊게 남았던 디저트였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판매를 하는 곳은 물론 레시피조차도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자신 있게 이것을 대표 메뉴로 내놓은 곳이 궁금하지 않을 리가. 아니나 다를까 동행했던 지인 역시 고기와 파이가 하나의 음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지만 금세 후회할 것이라 일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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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좋은 자리를 선점해두고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옛 한옥이 떠오르는 내부 인테리어는 곳곳에 놓인 레트로 무드의 소품과 화분 덕인지 포근한 시골의 할머니 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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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트파이를 영접할 시간.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적이었다.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의 파이는 다진 고기와 야채들로 채워졌다. 추억 속 파이처럼 치즈는 없었지만 충분히 풍부했고, 오히려 깔끔해서 고기 파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 미트파이가 메인이지만 에그타르트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파이들이 준비돼있으니 속재료 취향에 따라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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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와 함께 주문한 음료는 유자에이드와 말차라떼. 에이드는 사장님께서 손수 담으신 유자청을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말랑한 건더기가 둥둥 떠다니는 시판 유자청과는 달리 오독오독 존재감을 자랑하는 유자껍질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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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가 베이스로 깔린 말차라떼의 맛은 모 브랜드의 녹차초코 아이스크림을 떠올리게 했다. 과하게 달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진득한 말차와 코코아가 만남이 조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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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메아는 반려동물과 아이들을 모두 반긴다. 노키즈존 표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요즘의 핫플레이스에서 이토록 사려 깊은 공간이라니. 다만 좌석에 따라 제한되는 곳이 있으니 미리 안내 문구를 확인 후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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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주 침시술소

제주 서쪽 가볼만한곳 침시술소

한 끼에 2만 원을 훌쩍 넘기는 특산물 맛집에 싫증이 난 여행객이라면, 제주 침시술소를 제안한다. 다소 엉뚱하고 위트 있는 간판만으로도 공간을 기억하기엔 충분하지만 가장 중요한 소바의 맛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곳이다.

평일 점심에 방문했던 나의 경우, 잠깐의 대기가 있었지만 테이블 회전이 빠른 편이라 금세 안내받을 수 있었다. 홀로 방문하더라도 순서가 되면 빈 좌석이 4인 테이블이던 2인 테이블이던 가리지 않고 안내해 주신다. 혼자 왔다는 이유만으로 입장을 거부당했던 모 식당이 떠오르며 괜히 두 배로 감사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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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메뉴는 냉소바와 유부초밥. 냉소바는 달짝지근한 육수에 새우튀김 토핑이 얹어져 나온다. 간무를 넣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추가로 와사비를 제공한다. 별안간 국물에 와사비를 풀어먹는 게 익숙하지 않아 조금 망설였지만 살짝 올라오는 알싸한 기운이 오히려 달큰한 육수와 어울렸다.

제법 통통한 살을 자랑하는 새우튀김 토핑은 그때그때 튀겨서 제공한다. 덕분에 차가운 메밀면과 바삭한 튀김을 함께 맛볼 수 있어 즐거웠다. 새우튀김은 기본으로 한 개가 제공되며 원하는 만큼 추가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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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식사량이 적은 사람이라면 소바만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유부초밥을 추가해보자.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문장을 되새기며 보다 든든한 한 끼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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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영수증에 찍힌 상호명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오로라 식품‘. 침시술소와 소바 그리고 오로라를 연달아 곱씹어 보며 연결고리를 찾아보았지만 생각할수록 미궁이었다. 그치만 아무렴 어떠한가. 간판에 한번, 만족스러운 식사에 두 번. 어쨌거나 침시술 없는 침시술소에서의 점심시간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은 존재한다. 머무른 시간과는 관계없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준 곳이라면 어디든 마음의 고향이 될 수 있다. 결국 머릿속에 반짝하고 남아있는 순간들은 오래 머물렀던 곳보다는 오래 머무르고 싶었던 곳들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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