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에 나는 보통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곧 나를 아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음식을, 분위기를, 음악을 좋아하는지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마음을 흐리게 하는 날도 있다. 그 음악은 좋았다가도 지겨워지고 그 향기는 사랑스러웠다가도 끔찍해진다. 참으로 복잡한 사람. 꾸준히 좋아하던 것들에 문득 의문이 생기는 날에는 남의 취향을 엿보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취향을 보고 느끼며 자연스레 나도 모르던 나를 알아간다.

일상에 반짝이는 영감이 필요할 때, 좋아하는 것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방문하기 좋은 종로의 세 공간을 소개한다.

종로 놀거리 BEST 3
남의 취향을 통해 발견하는 것

1. 페이퍼마쉐 (Paper mache)

종로 놀거리 페이퍼마쉐

기와로 마감한 지붕과 한글 간판이 익숙한 동네. 서울에서 가장 서울다운 곳. 촌스러운 시골 사람에게 종로는 그런 곳이었다. 연남동에서 페이퍼마쉐를 발견했대도 그랬을까. 외관부터 유럽의 건축물을 떠올리는 페이퍼마쉐를 발견하고 ‘어떻게 이런 공간이 여기에?’ 같은 생각을 했던 건 정말 단순히 종로라서였다.

종로 놀거리 페이퍼마쉐

모던‘이라는 추상적인 콘셉트를 공간으로 구현한다면 이런 곳이겠지. 카페는 심플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매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들의 디자인은 간결했지만 우드, 라탄, 대리석 등 소재를 달리해 신선함을 더했다. 하나의 오브제처럼 디자인이 유니크한 조명 역시 인상적이었다. 매장은 1층, 2층을 비롯해 테라스 공간까지 이용할 수 있어 꽤 넓은 편이다. 건물의 층고도 높고 테이블 간격 역시 여유가 있는 편이라 뭘 해도 답답한 계절에 편히 쉬어갈 수 있어 좋았다.

종로 놀거리 페이퍼마쉐

좌석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공간이 떠오르는 것 역시 페이퍼마쉐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 골드 컬러 조명이 빛을 밝히는 좌석은 고급스러운 갤러리를 연상시키기도 했고, 일렬로 기다랗게 놓인 테이블 존은 여행자들이 가득한 호스텔의 로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아몬드라떼와 스콘을 주문했다. 아몬드 라떼는 우유 대신 아몬드 밀크가 들어간다. 아몬드 특유의 진한 풍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우유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유당 불내증이 있는 사람도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적당히 산미가 느껴지는 원두는 라떼를 두 배로 고소하게 만들어준다. 아몬드 밀크가 익숙하지 않다면 두유로도 즐길 수 있으니 참고할 것.

– 운영시간 :
평일 7:30 – 22:00
주말 10:00 – 22:00

2. 무용소

종로 놀거리 무용소

쓸모란 무엇일까. 일주일에 3번 이상 사용하는지, 가성비가 좋은지,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우리는 무언가의 쓸모를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서랍 속에 넘쳐나는 비슷한 디자인의 스티커들, 장식장을 가득 채운 피규어들의 쓸모는 앞서 말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오롯이 취향의 집합으로 탄생한 무용소는 쓸모의 정의에 진지한 물음표를 던진다.

종로 놀거리 무용소

평일 낮에는 디자인 스토어로, 주말에는 칵테일 바로 운영하는 무용소. 디자인 스토어와 칵테일 바의 연관성이라… 와사비와 팬케이크만큼 쉽사리 연결고리가 떠오르지 않는 조합이다. 평일 낮에 방문했던 나는 디자인 스토어로서의 무용소를 만나볼 수 있었다. 작은 소품 숍 규모의 가게에는 색색깔의 엽서와 그림이 온 벽면을 채우고 있다.

종로 놀거리 무용소

특별했던 점은 판매하는 그림의 대부분이 ‘리소그래프’였다는 것. 직접 잉크를 눌러내 인쇄하기에 비교적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분명 그만의 매력이 있다. 뚜렷하고 생기 있는 컬러감은 물론, 수작업을 통해 생산되어 ‘하나밖에 없는’이라는 수식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덕후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리소그래프 역시 사장님의 취향이다. 판매하는 상품 중에는 직접 작업을 하신 것도 있다고. 몇몇 그림이나 엽서 옆에는 참고할 수 있는 설명글이 적혀있다.

종로 놀거리 무용소

금요일 저녁과 주말에는 위스키 시음실로 운영된다. 위스키 시음실에서는 9종의 싱글몰트위스키를 선별해 테이스팅 메뉴를 준비한다. 예약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무용소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참고할 것. 6월 동안은 커피 리큐어 브랜드 깔루아와 콜라보를 진행해 팝업 바로도 운영하고 있다.

종로 놀거리 무용소

평일 낮에 방문했던 나는 오렌지에이드를 주문해 바 테이블에 앉았다. 누군가 어떤 밤에 예쁜 칵테일을 주문했을지도 모르는 좌석에서 에이드를 마시는 기분은 묘했다. 이런 곳에서조차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싶진 않아서 처음 보는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는 문장 필사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무용소가 말하는 공간의 쓸모란 이런 것이었을까. 취향껏 원하는 시간에 방문해서 원하는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 결국 쓸모를 정의할 수 있는 건 온전히 그 공간과 시간을 사용하는 나에게 있다.

– 운영시간 :
수, 목요일 14:00 – 19:00
금, 토요일 14:00 – 22:00 break time : 19:00 – 20:00
일요일 14: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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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푼크툼

종로 놀거리 푼크툼

프랑스에 가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랑스에 다시 가고 싶다. 마카롱과 향수의 나라, 우아한 거리에는 샹젤리제 같은 음악만 흘러나올 것 같았던 나의 14년도 겨울 파리는 축축했고 흐렸고 맛이 없었다. ‘어떻게 먹는 것마다 이럴 수가 있지?’ 같은 생각으로 사흘을 보냈고 머무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마음에 남는 식사가 없었다.

종로 놀거리 푼크툼

푼크툼은 프랑스 가정식을 선보이는 서촌의 작은 식당이다. 사실 이곳은 세탁소 시절부터 알던 서촌의 몇 안 되는 나만의 핫플레이스이다. 진짜 세탁소는 당연히 아니었고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라는 이름으로 서촌의 또 다른 골목에서 가게를 열던 시절이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호가 발목을 붙잡았던 그날, 프랑스 음식이라면 에스카르고 같은 것밖에 모르던 나는 라따뚜이를 먹고 파리에 대한 기억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종로 놀거리 푼크툼

서론이 길었다. 빈티지한 책과 소품이 가득했던 세탁소 시절과는 달리 21년도의 푼크툼은 우드톤의 차분한 가구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곳곳에 놓인 엽서와 그림들로 프랑스에서 살다 오신 사장님 부부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 센스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푼크툼에는 세 가지 종류의 카레와 라따뚜이가 있다. 나는 라따뚜이를 주문했지만 강황 밥이 준비되는 카레도 세 종류나 있으니 여러 명이 온다면 다양하게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종로 놀거리 푼크툼

라따뚜이는 애호박, 가지, 마늘 등을 토마토소스와 함께 끓여낸 스튜 요리이다. 사실 가지의 물컹한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처음 라따뚜이를 주문하기에 앞서 고민했다. 그러나 길어지는 고민은 시간만 잡아먹을 뿐. 이 마법의 스튜를 알고 난 뒤, 나는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재료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조용한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토핑으로 베이컨이 조금 들어가긴 하지만 대부분의 식재료가 모두 채소라서 가벼운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종로 놀거리 푼크툼

알 수 없는 언어가 잔뜩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홀로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여긴 파리의 공원도, 식당도 아니었지만 여유롭게 흘러가는 푼크툼의 시간 속에서 분명 파리를 느꼈다. 종로의 골목에서 이토록 이국적인 저녁이라니. 혼자 방문해도 좋았지만 아끼는 사람들과 먼지 쌓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을 듯하다.

– 운영시간 :
매일 11:30 – 20:30


내가 좋아하는 페퍼톤스의 음악이나 아이스 라떼가 나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로 나는 나를 알아간다. 왜인지 만사가 지겨운 요즘이라면, 남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에 몸을 맡겨보자.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했는지. 그런 것들을 물으며 보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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